지영석 엘스비어 회장 (Columbia MBA): 연봉 18억원 회장 이코노미스트석만 고집
대한민국에는 SPG 같은 최고의 실력과 양심과 열정을 가진 MBA/MS/PHD 컨설팅동양인 최초 랜덤하우스 사장·국제출판협회 회장 지낸… 지영석 엘스비어 회장: Columbia MBA, 프린스턴대 경제학사] 연봉 18억원의 회장, 비행기는 이코노미석 타 "자녀에게 많은 걸 보고 경험하는 기회를 주고 엘스비어는 과학·의료·법률 분야의 논문과 전문 정보를 제공하는 글로벌 IT기업이다. 연매출 3조7000억원. 세계 69개 도시에 사무실이 있고, 서울에도 지사가 있다. "내 개인적인 일로 왔는데 그들이 왜 오나. 자기 일이 있는데." ―그래도 인사는 해야 하지 않나? "회장이 자기 하는 일을 방해하고 시간을 뺏으면 되나. 그런 특권을 행사하다 보면 버릇돼 남용하게 된다. 그럴 경우 부하 직원들은 상사를 좋아해서 모시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어 모시게 된다." 재미교포인 그는 세계적인 출판사 랜덤하우스 사장과 동양인 최초로 국제출판협회(IPA) 회장을 지냈다. 국내에서도 꽤 알려진 명사다. ―글로벌 기업 회장이라면 연봉이 얼마일까? 일반 독자들은 이런 걸 가장 궁금해한다. 나도 그렇지만. "연봉과 보너스를 합쳐 150만달러(약 18억원)쯤 된다. 한국처럼 승용차, 운전기사, 비서, 골프멤버십 같은 혜택은 없다. 비행기도 이코노미석을 타야 한다." ―회장이 이코노미석을 탄다? "직원들에게만 이코노미석을 타라고 하는 게 옳은가." ―높이 올라가면 대우가 달라져야 하지 않나? "비행시간이 10시간 넘으면 비즈니스석을 끊어준다. 이는 직급이 낮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그게 공평하다." ―그게 왜 공평한가? "조직에서 다들 회장이 되려고 하면 되겠나.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을 함으로써 대우를 받아야 한다. 승진보다는 자신의 업무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우리 회사 안에서 내가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직원들은 나보다 연봉이 높다." ―내가 아는 회장들과는 좀 다른데…. 회장으로서 권한은 갖고 있나? "직원을 뽑고 해고하는 인사권을 갖고 있다. 아니, 권한이라기보다 '업무'라고 해야 맞다. 좋은 인력을 뽑아 잘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한 내 역할이다." ―회사 사업을 구상하고 최종 결정하는 게 회장의 역할 아닌가? "내가 처음 회장을 맡았을 때(2009년) 올라오는 결재 서류가 산더미 같았다. 이미 결재 사인을 6~7개씩 받은 서류들이었다. 나는 '두 사람 이상 사인한 것은 올리지 마라. 사인이 3개 있으면 사업을 무효화시키겠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연간 1000여개의 새로운 학술 저널과 프로그램을 만든다. 거의 전부 내 결재 없이 진행된다. 이 중 900~950개는 실패한다." ―실패하면 회사 손실이 발생하지 않나? "실패한 직원에게 절대 불이익이 없다.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다. 나는 직원들이 꼭 출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무실에 나오기 힘든 상황이면 집에서 해도 된다. 얼굴을 맞대야 할 회의가 아니면 근무 장소와 시간은 본인에게 맡긴다. 그게 업무 효율이 훨씬 더 높다." ―회장이 있으나 마나 한 것 같다. "사무실에 앉아 회의하고 결재를 하면 시장의 감을 놓친다. 고객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엘스비어는 전 세계 4000여만명의 고객을 갖고 있음). 사무실에 앉아서는 전쟁을 지휘할 수 없다. 전선에 나가야 한다. 내게 올라오는 결재 서류는 100만달러 이상 되는 것들이다. 현장 감각이 없으면 내가 정말 중요한 의견을 제시할 수 없고 결정할 수도 없다. 간혹 내가 아이디어를 던져줄 때도 있다. 하지만 다 실행되는 것은 아니다. 밑에서 판단해 할 만하면 하고, 아니면 왜 안 되는지 내게 통보해준다." ―퇴짜 맞으면 회장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인데? "내 잘못 판단으로 회사를 말아먹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중간 간부에게 거의 전권을 준다. 자신의 분야에서는 이들이 나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다. 통상 조직은 가운데가 형편없으면 망한다. 빵·고기·빵으로 되어 있는 햄버거에서 보듯이 가운데가 실속이 있지 않나." 그는 지난밤 늦게 베이징에서 업무를 마치고 날아왔다. 교육부 산하 미래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는 매달 한 번씩 방한한다. 단 몇 시간 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서다. ―세간에는 이런 위원회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데 무슨 논의를 하고 있나? "현재의 학교가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맞는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했다. 창의성 교육을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교육 개혁이라면 으레 창의성 교육을 꺼내는데, 그 나이에 필요한 지식 습득을 위한 암기(暗記)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이는 별로 없다. "동감이다. 지식 습득을 위한 암기 교육은 중요하다. 암기 교육에 플러스 알파(창의성)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현실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요령 교육'이다. 입시를 위해 문제를 푸는 표피적인 방법만 습득하고 있다." ―미래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학생들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학교와 학습 방식을 운영하자는 것이다. 한 학교 같은 학년 안에서도 학생들이 다 똑같이 배우는 게 아니고, 가령 수학을 잘하면 중2라도 고3 과정을 할 수 있다. 그 학교에서 가르쳐줄 형편이 안 되면 옆 고등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는 결국 대학 입시와 직결된다. "대학 '간판'으로 모든 걸 결정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어느 대학에 학생을 몇 명 보냈느냐로 학교를 평가하지 말고, 학생·학부모·교사의 만족도도 따져봤으면 한다. 나는 회사에서 매출과 순이익 분석뿐만 아니라 직원과 고객의 만족도를 꼭 조사하도록 한다."
"내가 멘토링했던 학생이 400명쯤 된다. 이들은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진로를 결정해야 할지를 내게 물어왔다. 늘 교육 문제와 직면했던 셈이다. 다른 부모들처럼 내 딸을 키울 때도 그랬고." ―두 딸은 명문 프린스턴 대학을 나왔다고 들었는데? "어릴 때 책을 많이 읽혔다. 그 뒤로는 비유를 하면 뷔페 음식점에 데려갔다. 네가 골라서 먹으라고. 거기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낸다. 가령 참치가 맛있었다고 하면 다음에는 참치 전문 음식점에 데려가 봤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네가 장차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좋겠으니 이런 대학 이런 전공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준 적이 없었다." ―자녀가 남들과는 다른 코스를 밟았나? "남들이 하는 대로 중·고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자신의 관심 분야를 계속 바꿨다. 대학을 졸업해 직장도 전공과 상관없는 걸 택했다. 그때 나는 승리감을 느꼈다." ―승리감이라면? "아이가 자기가 해온 과정에 예속돼 앞길을 걸어가야 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다양하게 겪어온 과정 때문에 앞길을 고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될 듯 말 듯하다. "과거에는 어느 대학과 어떤 경력을 갖춰서 어떤 코스를 걸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학력과 간판이 아니라, '네가 할 줄 아는 게 무엇이냐' '잘하는 스킬이 무엇이냐'를 묻는다. 과거에는 한우물만 파라고 했다. 딱 정해져 있었다. 지금 세대는 자신의 직업을 세 번쯤 갈아타야 현명하다. 이걸 못하면 오히려 처진다." ―자녀 교육에 모든 걸 걸고 있는 학부모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부모는 언젠가는 자녀를 놔줘야 한다. 너무 일찍 놓아주면 자녀는 지도를 못 받고, 오래 잡고 있으면 자기 길을 못 간다. 자녀에게 많은 걸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결정은 본인이 내리도록 해줘야 한다. 설령 그 결정이 마음에 안 들어도 말이다." 그는 외교관의 아들로 미국에서 출생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컬럼비아 대학원에서는 MBA를 했다. 첫 직장은 금융회사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였다. 그 뒤 출판그룹으로 옮겨 승승장구했다. ―무엇이 지금의 성공을 갖고 왔나?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이다. 대학 친구의 아버지가 내 멘토였다. 그분은 '보지 않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다. 많이 봐야 상상력도 느는 법이다'라며 20대 동양인에게 미국 상류 백인사회를 경험시켜줬다. 그러면서 '직장의 명성을 따지지 마라. 좋은 사람을 만나서 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는 내가 멘토링하는 학생들에게 해주는 말이 됐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자기 원하는 대로 되나? "절반은 자기가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좋은 환경에 가야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다. 명문 학교에 가려는 이유는 '간판'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친구들 사이에 끼여 경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시야가 훨씬 넓어질 수 있다. 자기에게 당장 편한 것만 하면 세상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동양인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한계를 느낀 적은 없나? "미국 상류층에서는 실력으로 차별한다. 인종과 학벌을 따지지 않는다. 유색(有色)이든 여성이든 동성애자든 상관없다. 상류층이 아닌 데는 나를 유색인종에 집어넣는다. 하지만 이는 나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나의 종류를 평가하는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았다." ―인생의 성공 얘기만 했는데,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고마운 질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해봤다. 특히 내가 아는 성공한 사람들의 죽음을 들었을 때 그랬다. '이분들은 성공한 인생이라는데 과연 무엇이 남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 삶도 그런 인류(人類) 연속성의 한 부분이다. 나도 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인류 연속성의 한 부분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정돈된 생각은 아니다. 또 어떻게 변할지. 나도 여섯 달쯤 절에 들어가 생각하고 싶다. 아직은 일이 바빠 그럴 용기가 안 나지만." 그는 일 년에 100일 넘게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내일 런던 사무실로 다시 돌아갔다가 며칠 뒤 아프리카에 가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면 뉴욕 일정이 예정돼 있다…." (본 기사는 조선일보에서 발췌한 것임) 기관은 있습니다. www.spgmba.com |